아침일찍 북경으로 출발했다.
아시다시피 북경은 중국의 수도이며 북경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과 같이 무슨 자부심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한다.
북경은 중국의 4대 도시중 하나이며 복숭아로 유명하다. 그 옛날 양귀비가 북경 복숭아를 상당히 좋아하였다고 한다.
북경에는 대련과 마찬가지로 2층버스가 보였고 지하철이 있다.
중국에는 2도시에만 지하철이 있는데 상해와 북경이 그곳이다.
북경 시내에 있는 천안문 광장.
89년 천안문 사태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당시 천안문에 모였던 대학생들은 모두 직장을 좋지 않은 곳으로 받았다고 한다.
※ 참고 : 아직 중국은 공산국가라서 나라에서 직업을 정해준다고 한다.
천안문 광장은 정방형에 가까왔고 한가운데에는 기념비가 하나 서 있었는데 그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천안문 광장을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는 건물이 4개 있는데 천안문, 모택동 기념관, 박물관,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 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늙으면 죽어야지 ^^;)
천안문 뒤쪽으로는 '마지막 황제'로 널리 알려진 자금성이 위치한다. 자금성은 명, 청의 황궁으로 면적이 72만㎢에 이르며 자금성은 궁(宮)이지만 궁을 둘러싸고 성곽같이 벽을 쌓아놓았고 그 둘레로 다시 인공 호수를 파 놓아 마치 성과 같다고 하여 '자금성(城)'이라 하였다고 한다.
자금성안에는 9999개의 방이 있다고 하는데 이유는 중국의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천자만이 10000개 이상의 방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 적은 개수의 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금성의 특징은 중간에 한 건물(왕이 첫날밤을 지내는 건물이라고 함)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왕이 정사를 보던 곳이 있고 이곳에는 나무가 없으며 뒤쪽으로는 왕비들과 궁녀들이 사는 곳이 있고 나무가 많았다.
정사를 보는 곳에 나무가 없는 이유는 왕을 암살하려는 누군가가 매복할 장소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하며 같은 이유로 왕의 침실도 몇십개 중에서 어느 방에서 자는지 모르도록 했다고 한다.
자금성에 들어가는 문이 '오문'인데 말 그대로 5개의 문이 있다.
이중 한 가운데 있는 문이 황제만 다니는 문으로 제일 크고 높으며
그 옆에 하나씩의 문이 신하들이 지나 다니는 문이고 그리고 가장자리에 있는 2개의 문은 큰 행사가 있을 때에만 개방을 한다고 한다.
단 예외의 경우가 있는데 과거에 장원급제 한 사람은 예외적으로 딱 한번 황제가 다니는 가운데의 문으로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황제에게는 9000궁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의자왕이 3000궁녀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뭐 그럴만도 할 것 같다.(에구 부러워라)
이곳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건물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건물들과 달리 모두 파란 지붕의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고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해, 달, 하늘, 땅에 제사를 지내던 건물이 대칭적으로 세워져 있다.
서태후를 위해 만들었다든가 서태후가 살았다던가?
음.. 기억이 가물가물..
하여튼 경치가 좋은 서호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하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호수가 있는데 놀라운 것은 이것이 인공호수라는 것이고 더우기 그 땅을 판 흙으로 산을 만들어 그 산에 절을 하나 지어 놓았다.
이화원의 크기는 자금성의 4배이며 호수의 넓이는 이화원 전체의 3/4라고 한다.
아시다시피 북경은 중국의 수도이며 북경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과 같이 무슨 자부심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한다.
북경은 중국의 4대 도시중 하나이며 복숭아로 유명하다. 그 옛날 양귀비가 북경 복숭아를 상당히 좋아하였다고 한다.
북경에는 대련과 마찬가지로 2층버스가 보였고 지하철이 있다.
중국에는 2도시에만 지하철이 있는데 상해와 북경이 그곳이다.
북경 시내에 있는 천안문 광장.
89년 천안문 사태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당시 천안문에 모였던 대학생들은 모두 직장을 좋지 않은 곳으로 받았다고 한다.
※ 참고 : 아직 중국은 공산국가라서 나라에서 직업을 정해준다고 한다.
천안문 광장은 정방형에 가까왔고 한가운데에는 기념비가 하나 서 있었는데 그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천안문 광장을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는 건물이 4개 있는데 천안문, 모택동 기념관, 박물관,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 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늙으면 죽어야지 ^^;)
천안문 뒤쪽으로는 '마지막 황제'로 널리 알려진 자금성이 위치한다. 자금성은 명, 청의 황궁으로 면적이 72만㎢에 이르며 자금성은 궁(宮)이지만 궁을 둘러싸고 성곽같이 벽을 쌓아놓았고 그 둘레로 다시 인공 호수를 파 놓아 마치 성과 같다고 하여 '자금성(城)'이라 하였다고 한다.
자금성안에는 9999개의 방이 있다고 하는데 이유는 중국의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천자만이 10000개 이상의 방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 적은 개수의 방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금성의 특징은 중간에 한 건물(왕이 첫날밤을 지내는 건물이라고 함)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왕이 정사를 보던 곳이 있고 이곳에는 나무가 없으며 뒤쪽으로는 왕비들과 궁녀들이 사는 곳이 있고 나무가 많았다.
정사를 보는 곳에 나무가 없는 이유는 왕을 암살하려는 누군가가 매복할 장소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하며 같은 이유로 왕의 침실도 몇십개 중에서 어느 방에서 자는지 모르도록 했다고 한다.
자금성에 들어가는 문이 '오문'인데 말 그대로 5개의 문이 있다.
이중 한 가운데 있는 문이 황제만 다니는 문으로 제일 크고 높으며
그 옆에 하나씩의 문이 신하들이 지나 다니는 문이고 그리고 가장자리에 있는 2개의 문은 큰 행사가 있을 때에만 개방을 한다고 한다.
단 예외의 경우가 있는데 과거에 장원급제 한 사람은 예외적으로 딱 한번 황제가 다니는 가운데의 문으로 지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황제에게는 9000궁녀가 있었다고 하는데 의자왕이 3000궁녀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뭐 그럴만도 할 것 같다.(에구 부러워라)
이곳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건물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건물들과 달리 모두 파란 지붕의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고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해, 달, 하늘, 땅에 제사를 지내던 건물이 대칭적으로 세워져 있다.
서태후를 위해 만들었다든가 서태후가 살았다던가?
음.. 기억이 가물가물..
하여튼 경치가 좋은 서호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하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호수가 있는데 놀라운 것은 이것이 인공호수라는 것이고 더우기 그 땅을 판 흙으로 산을 만들어 그 산에 절을 하나 지어 놓았다.
이화원의 크기는 자금성의 4배이며 호수의 넓이는 이화원 전체의 3/4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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