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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Space../오래된 신혼일기

정월대보름날의 감~동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갔다.
오후내내 잠을 푹 자 보려고 했지만 잦은 기침과 생리현상으로
땀만 삐질 삐질 흘리며 뒹굴기만 했다.

오곡밥이랑 나물도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시댁에 갈려면 아무래도 찬바람도 맞아야 하고
가게 되면 저녁상을 몇 번을 차려내고 치워야 할 지 모르는 두려움에...
(시아버지와 시동생이 따로따로 퇴청하시기 때문에...) 참았다.

집에 남아있는 국 한 대접에 찬밥 조금 말아먹고
신랑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신랑이 돌아오면 뽀족한 수가 있는 양...
마침 또 가는 날이 장날이라 한달에 한번 밖에 없는 볼링치는 날이었다.
볼링을 몇 게임이나 치고 오려나...

늦은 10시 따각거리며 현관문 따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 발 밑으로 안방문앞에 선 신랑은 뭔가를 한 아름.
나의 동태를 한 번 살펴본 뒤 국을 데우고 나물을 조금씩 내더니 오곡밥을 차려주었다.
시댁에 들러 온 것이다.

아들은 절대로 안 먹는 아홉가지 나물과 고기국을 며느리 먹으라고 한 아름 싸주셨다.
색시가 좋아하니까 많이 싸달라고 그랬어... 맛있지?

오늘 새벽
신랑의 알람시계는 울린지 꽤 됐는데...
다시 불이 꺼지고 조용해져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
뭔가 마루쪽에서 사그락사그락... 이 아찌가 회사 출근안하고 뭐하는 걸까?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눈이 부셔 실눈을 뜨고 나가보니
접시에다 땅콩 몇 알 호두 몇 알 생밤 몇 알을 까 놓고 있었다.

"색시 일어났어? 이거 부럼 깨문다 하고 딱 깨물어 먹어. 자~"
"귀밝이술도 마시고... 자~"

그러곤 조금 늦은 듯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잠에 취한 몽롱한 상태에서 감동 받으며 아가랑 색시랑 알밤을 나눠 먹었다.
아가야 오늘이 정월 대보름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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